김성룡 공군대장은 1926년 6월 5일 경북 영일군 지행면 모포리(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모포리)에서 태어났다.
일본으로 건너가 야머구치현립 우베중학교와 다치아라이 육군비행학교를 수료한 그는 광복 이후 귀국하여
1948년 7월 육군항공기지사령부에 입대하였으며,소정의 교육을 받고 1949년 3월 1일 소위로 임관하였다.
임관 후 T-6 건국기 조종사로 활동하던 김성룡 중위(당시 계급)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美공군 F-51D 무스탕 전투기 인수 요원으로 선발되어 일본의 이타즈케 기지로 파견되었으며,
한 번의 연습비행을 포함한 단기간 인수교육을 받고 7월 2일 귀환하였다.
1951년 8월 지리산ㆍ가야산 공비토벌작전, 1952년 3월 송림제철소 포격작전, 1952년 8월 평양대폭격작전,
1953년 고성 351고지 전투 지원작전 등 전쟁 기간 우리 공군 주요 작전에 참여하여 총 85회의 출격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러한 공적으로 그는 6ㆍ25전쟁 기간 동안 을지무공훈장(1951), 미국 수훈비행십자장(Distingguished Flying Cross, 1952),
충무무공훈장(1953) 등을 받았다.
정전 이후에는 제10전투비행단장, 공군작전사령관, 공군사관학교장, 제10 공군참모총장으로 재직하였다.
공군참모총장으로 재직 시 공군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특히 당시 세계 최강의 전력으로 평가받던
F-40 전폭기를 도입하여 공군의 작전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1969년 1월 1일 공군 역사상 최초로 공군대장으로 진급한 다음, 1970년 8월 1일 전역하였다.
군문을 나온 뒤에는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으며,
2002년 11월 9일 향년 76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그의 유해는 2002년 11월 12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장군 1묘역에 안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