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해병대 중위는 1952년 3월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여 경기도 장단지구를 방어하고 있던 해병대 1연대 11중대 3소대장으로 보직되었다.
당시 장단지구는 수도 서울에서 불과 25마일 거리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이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1952년 3월부터 대한민국 해병대와 중공군 간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1952년 10월 31일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 감행 때 김용호 소위(당시 계급)는 장단지구 사천강 지역 전초진지에서 증강된 1개 소대의 병력으로 대대 규모의 중공군을 맞아 백병전까지 벌이며,
결사적으로 진지를 사수했다.
또한, 병력 및 화력의 열세로 적이 끝내 진지에 난입하자 죽음을 무릅쓰고 아군에 진지 내 사격을 요청하는 등 사투를 벌인 끝에 중공군을 격멸하는 전과를 거뒀다.
마침내 김용호 소위는 최악의 상황을 이겨내며 영웅이 되었지만, 중공군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소대원들이 70명이나 전사한 것을 확인하고 사랑하는 부하들을 잃은 죄책감에
부하 해병들이 잠든 고지에서 죽음으로 속죄한다는 마음으로 안타깝게 자결했다.
정부는 장단지구 전투에서의 공훈을 기려 중위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그의 유해는 1959년 11월 국립서울현충원 제19묘역에 안장되었다. |